0. 들어가기
사회혁신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을 공부하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도구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지금까지 리빙랩, 사회혁신 이론, 거버넌스이론, 청년주택의 사례, 사회주의와 사회혁신의 관계 등등을 알아보았다. 오늘은 '사회, 개념, 주체'라는 개념으로 간략하게 연구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사회라는 개념에 대한 구분, 그 안에서 개념들의 변화, 결과적으로 사회개념의 변화 안에서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알아 볼 것이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사회의 구분_오늘이 사회이론가들에서 구분한 3가지의 '사회'개념
2. 개념_코젤렉의 구분과 박명규, 박찬승의 '시민, 인민, 국민, 민족과 민족주의'
3. 주체_P오비탈로 본 주체의 형성
4. 혁신_3가지 구분
5. 플래폼과 민주주의_시민과 정부의 연결점
6. 거버넌스와 개념
1. 사회의 구분
- 모더니즘의 분류: 사회학적 지형도
오늘의 사회이론가들에서 발췌함, minnation 재구성
근대modernity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철학에서, 정치에서, 문화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겠지만 오늘은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근대의 모습을 그려보자. 그럼 우리가 추구하려는 '사회혁신'에 있어서도 뚜렷한 방향성vector이 보이지 않을까?한다.
료타르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즈의 경계를 레퍼런스 포인트에서 찾았다. 스스로에게 찾는 것이 포스트모던.
1) 고근대, High Modern
고근대의 특징은 근대성이 농후한 지점을 말한다. 근대성은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말한다.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자아의 발견을 통해서 새로운 인식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헤겔을 통해서 정신의 도약에 따른 지식의 발전은 절대정신으로 도달하는 것 같았다. 아울러서 과학주의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분해하고 쪼개면서 이해의 표면적을 늘리는 작업들이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개인이라는 작은 단위에서 시작된 분석과 이해는 점점 사회와 국가, 세계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자기통제에서 사회통제 그리고 세계통제까지 확장되는 세계관은 가장 작은 단위에서 통용되는 이론들이 가장 큰 단위에서도 통용된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했다. 근대에 발견한 '사회'라는 것은 그런의미에서 중간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 개인의 속성들이 스케일을 넓혀갈수록 사회적인 특성으로 나타나고 사회적인 특성들의 합은 국가라는 단일한 통합체계로 나타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고근대적 특징을 우리는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서 살펴볼 수 있다.
모더지즘은 프렉탈로 S에서 XL까지 유추해볼 수 있다.
2) 후근대, Late Modern
후근대는 탈근대와 고근대 사이의 특징을 향유한다. 완전히 체계가 탈바꿈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체계가 완전하여서 항상 똑같은 산출물을 내는 것도 아니다. 부족한 부분들을 보수하면서 체계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사이에서 후 근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근대라는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주관성과 새로운 형태의 일상을 창조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근대에서 행해지던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도 '비물질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의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후근대론자들은 근대의 근대화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서 재근대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피터버거와 훅실드와 같은 학자들은 근대의 재발명을 통해서 근대의 미완의 기획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보면 프랑크프르트학파의 1세대(호르크하이머, 아노르노, 마르쿠제)가 고근대적 특징을 갖는다면 2세대인 하버마스는 도구적 이성의 회복을 위한 새로운 이성(의사소통적 합리성)의 발견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는데 이것이 후근대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3) 탈근대, Post-modern
탈근대는 우리가 흔하게 들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간이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진화,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구성,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완전성에 대한 동시성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합리적인 사회를 기본 전제로 탑재하지 않는다. 합리적일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양자역학의 시간대'가 펼쳐진다. '포스트모던적 조건'이라는 책에서 장 프랑수아 료타르는 탈근대의 특징을 '자기 자신에게서만 레퍼런스를 찾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합리성이 지배하던 고근대와 후근대와는 다르게 비합리성을 기본으로 자기자신이 생산해낸 이론과 생각, 감정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바로 포스트모던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탈근대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며 모순과 역설이 어디서나 등장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생각도 연속적이지 않고 비연속적인 부분들이 증가하며 사실은 삶 자체가 원래 비연속적이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지점들을 찾는다. 포스트모던은 처음에는 근대를 해체하는 특성을 찾다가 마지막에는 새롭게 합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종단에서는 캐치문화(완전 유치한 수준의 이미지들)와 그로우테스크(완전 잔인하고 베르나르뷔페와 같은 굵은 선들의 어두운 배경)로 분할한다.
2. 개념_코젤렉의 경우
개념사 연구에 있어서 독일의 라인하르트 코젤렉Koselleck은 개념을 장소와 시간의 중첩에서 탄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특히 시간층이 다양하게 중복될 수 있는데, 개념이 만들어진 시기, 사용된 지속시간, 앞으로 사용될 가능성 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3가지의 구분을 가지고 왔다.
1. 오래전에 사용된 용어의 의미가 지금도 지속되는 경우
2.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사회적으로 재구성되고, 재번역되어 의미가 달라진 경우
3.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경우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용어들은 개념사로 구분해 볼 때 2번의 유형에 가깝다. 사회라는 개념도 위에서 본 것처러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지만 재구성이 되었고, 주체라는 개념도 16세기 르네상스 이후에 부상했을 때는 세 번째 유형이었으나 지금은 두번째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그 외의 플래폼이나 거버넌스의 개념 같은 경우 세번째 유형으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기호와 기의를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중변환, Multi-transformation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다른 개념들이 만들어진다면 '다중시간'에 따른 '다중변환'이 만들어지고, 이것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주관적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개념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집단이 향유하고 공유하는 시간은 '약속'에 의해서 객관적인 시간으로 고정된다. 문제는 공동체마다 각기 다른 약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마다, 조직마다 각기 다른 시간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시간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시간의 연속인 삶의 흐름에서는 각기 다른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2020년대에서도 1970년대를 사는 사람들이 있고, 1970년대에도 2030년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면서 개념들은 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적용된다. 사회라는 개념도, 주체라는 개념도 시간의 비동시성으로 인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사용된다.
덧,
아래와 같이 주체와 개념사의 구분과 종합에 있어서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이 있다.
1. 주체를 개념화하면 전체적인 부분을 포괄할 수 있을까?
2. 개념사와 사회사의 종합이 가능한가?
3. 개념의 구분은 상관관계와 유사성을 어떻게 획득하는가?
3. 주체_상상계와 실재계
주체는 상상계화 실재계가 만나는 플래폼이다. 인간 자체가 플래폼이다. 플래폼의 성격 상 어떤 부분이 더 우선시되는 지에 따라서 다른 방식의 상징을 사용하게 된다. 인간의 정신과 생각에 따른 시뮬라크르는 떠돌아다니는 인간의 육체와 만나서 정착을 한다. 노마드는 다양한 생각들을 스스로 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하기도 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서 노마드를 벗어나서 정착민이 된다. 그럴 때 비로소 '나는 ~ 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정신과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관념론자들은 시뮬라크르로 구성된 '주체'에 맞는 인간 육체를 만들기 위해서 국가를 만들고, 노마드에서 축적된 경험으로 시뮬라크르를 만드는 경험론자들은 반대로 사회를 만들었다. (가정-사회-국가의 배치는 헤겔에서부터 마르크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어쨌든 '주체'가 탄생하는 광장은 '사회'이다. 우리는 사회의 성격에 따라서 플래폼인 '주체'가 가지게 되는 생각과 삶의 방식, 관계 맺기라 어떤 위치에 놓이는가에 따라서 다른 주체가 만들어 진다고 할 수 있다.
#1. RSI, 라캉
"무의식은 구조화되어 있다. 그 무의식의 구조화를 알아내는 방법은 언어이다."라고 말했던 라캉의 욕망이론의 핵심은 무의식을 구조화하기 위해서 실재계(the Real), 상징계(the Symbolic), 상상계(the Imaginary)로 나는 것이다. 세 가지 체계의 이니셜을 따서 흔히 RSI라고 부른다. 라캉의 3가지 세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정신분석학을 넘어서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까지 확대가 가능하다. 이론의 기능은 확장 가능성이니, 라캉의 RSI를 바탕으로 철학사를 다시 구성해보는 나름대로의 P-ORBITAL 모형을 제시하고자 한다.
조금 더 설명을 붙이자면, 실재계는 우리가 실재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영역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야깋고, 사람들을 만나고, 빨래를 하고, 글을 쓰면서 컴퓨터를 만지고, 게임을 하면서 핸드폰을 하는 현실 말이다. 이 현실은 다른 체계인 상상계나 상징계의 영역과 다르게 기억으로만 전해지고 오직 현재화된다. 실재는 계속해서 사라지면서 차이와 반복을 지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재계는 항상 상징계나 상상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오직 현재, 지금, 여기서만 가능한 영역인 것이다.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것처럼 '한 말'과 '하는 말'은 다르다라고 하는 것과 우리는 '영원한 현재를 사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니체가 말한 카르펜디엠은 이러한 실재계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직 이 시간, 여기에서만 이 사건과 관계가 만들어지고 다시는 이것이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일상이 반복되는 실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조그만 차이에서 완전히 다른 차이로 실재는 구성된다.
이에 반해서 상징계는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항상 무엇인가를 지칭하고 있다. 상징체계는 흔히 '언어'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상징화된 것들은 구조를 갖기 마련인데 언어는 문법체계를 가지고 사회적인 약속의 의해서 의미들을 만들어가는 상징계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라캉은 상징계를 통해서 실재계에서 경험한 개인들의 이지미와 감정이 언어화되어서 무의식의 구조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상상계는 우리의 관념 속에서 이성으로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상상을 통해서 존재하는 것들을 분할하고 연결하고 통합할 수 있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상상해볼 수 있다. '존재할 수 있는 것만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가, 존재하지 못하는 것들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철학사가 시작된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고민이다. 이것이 상상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흔히 상상계는 이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 P-ORBITAL, RSI
양자역학에 의하면 원자의 구조는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고체처럼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기체처럼 부피가 큰 것도 아니다.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우리는 시간 속의 존재이기 때문에 한 시점에 하나의 공간을 갖는다. 그러나 원자의 구조 속에서 오비탈OBITAL은 처음에는 전자가 원자 주위를 도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양자역학이 발견된 이후로는 전자가 원자를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원자 주위 어디나 존재하는 것을 알아내었다. 굳이 오비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오비탈의 종류 중에서 P-ORBITAL이 라캉이 말하는 RSI의 구조화와 같다는 것이다. 상상계와 실재계, 상징계의 흐름은 사실 정해져 있지 않다. 인간은 항상 실재계를 살면서 상상계에 접속하고 상징계를 사용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 실재를 표현하고 하면 상상계의 어떤 지점에 존재하는 사물을 꺼내서 상징계의 언어(미술로 보면 선과 색과 공감일 것이다)를 사용하여 표현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표현된 것은 또한 누군가가 보게 되면 상징계적 공명을 통해서 상상계를 변화시키고, 실재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비탈의 개념에서도 '공명resonance'은 다른 원자가 근접했을 때 전자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느꼈다면 그 작가의 어떤 지점에서 '공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라캉에게서 빌려온 RSI구조를 아래쪽에는 실재계를 위치시키고, 위쪽에는 상상계를 위치시켰다. 그리고 두 영역이 만나는 지점에 상징계를 위치시켰다. 앞으로 예술사나 미술사도 이러한 방식으로 위계를 정하고 서로의 영향력을 살펴보려고 한다. 물론 철학사에서도 이성을 중시하는 상상계적 이론들과 감성을 중시하는 실재계적 이론들이 계속해서 싸우거나 연결하거나 하면서 시대정신을 만들어가 가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예술사까지 확장시키기 않고 철학적인 관점에서만 이해의 폭을 넓혀보겠다.
플라톤의 구분
#3.순수일자, 기원
실재계의 아래쪽, 바깥 쪽에는 실재를 만들어내는 존재의 기원을 '마스'라는 덩어리로 본다. 어떻게 보면 세포조직 하나이기도 하면서 스피노자가 이야기하는 신의 양태를 만들어내기 이전의 속성들의 집합mouds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실재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감성과 이미지를 중시하는 철학자들은 인간이 물질에서 시작헤서 서서히 진화하여서 생각할 수 있는 사피엔스까지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을 먼저라고 이야기하는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속임수나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깐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혹은 칸트나 헤겔 같은 사람들은 대중을 속이고 있는 거짓교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실재계를 중시하면 중시할수록 물질들 간의 관계를 더 중요시 하게 된다. (그래서 신학정치론을 이야기한 스피노자는 물질로 부터 인간이 파생되었고, 모든 것들은 속성만 다를 뿐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중세기독교가 보기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모독하는 말이 되었다.)
반면에, 상상계의 위 쪽은 순수일자인 '신'이 존재하고 있다. 모든 정신은 신으로 부터 탄생해서 상징을 만들고 실재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생각했고, 신의 정신을 일부 부여받은 인간들은 자신들의 삶을 정신과 이성를 통해서 통제하고 지속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이야기한 이데아론은 이러한 신의 이데아를 어떤 특수한 계층만 부여받고, 그렇지 못한 계층은 자연스럽게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인간의 기원이 '신'에게서 부여받은 정신이라는 전제 때문이었다.
#4. 상상계, SYSTEM
상상계의 특징은 헤겔의 정반합의 개념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기존의 정신은 새로운 부정성인 '반'대를 만나서 더 고차원적인 '합'으로 발전한다. 헤겔이 이야기하는 변증법을 통해서 지식과 이성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깊어진다. 그리고 어느 범주에서나 상상계는 나름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시스템을 만들고 변증법에 의해서 시스템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간다. 인간이 되어 간다는 것은 사회와 가정, 국가와 세계에 대한 시스템을 이해하는 과정이면서 자신도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서 더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어간다는 데 있다. 시스템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상계적 이론과 학문은 국가를 유지하거나 사회를 유지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을 양산해 내었다. 물론 경제학이나 법학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서 발전하는 모든 것들은 상상계적 특징을 갖는다. 제도와 국가 사회와 문화, 사람과 가족은 시스템의 구성요소로서 서로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역사를 발전시킨다. 이러한 역사의 발전을 통해서 문명은 만들어지고 인류는 진보한다고 믿는다.
'정-반-합'의 변증법을 통해서 시스템은 더 정교해져 간다.
#5. 실재계, MOVEMENT
물질들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실재계는 질서보다는 운동을 중시한다. 살아 있는 것들은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매번 다른 선택과 변화를 만들어낸다. 인간은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자연과 동물 역시도 마찬가지로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 시스템은 항상 새롭게 바뀐다.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흐름이나 운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정의내릴 수 없는 신비와 차이가 있는 반복을 통해서 지속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단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실재계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오감을 통해서 끊임없는 데이터들을 수용하고, 자신도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존재들은 떨림을 통해서 다른 존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이다. 한나아렌트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에서 자연과 사람이 만나면 노동을 하게 되고, 사람은 작업을 통해서 인공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람은 자연과 인공물 사이에서 행위를 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실재계의 핵심이다.(들뢰즈, 베르그송으로 부터 제시되는 '물질과 기억', '차이와 반복' 등의 개념은 다음에 프랑스 철학 편에서 다루도록 한다. 일단 오늘은 큰 그림만 그려보자)
순수일자에 대한 질문은 실재계를 바라보는 철학자들에게도 매우 다양한 관점이 제시되었다.
#6. 상징계, Chora
상징계는 쉽게 말해서 언어를 떠올릴 수 있지만, 실재계와 상상계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면 중간의 공존 지점인 '코라chora'라는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 언어는 지시하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이 실재계에서 상상계적 개념과의 동일시가되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 '고양이'라고 부르는 순간 실재의 고양이와 머릿속의 고양이가 일치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이것도 역시 오비탈 개념이다) 상상계에서 시작된 상징계에서는 코라의 영역이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언어로 진행되는 과정을 진행하는 방면에, 실재계에서 사물을 보고 언어로 넘어오는 과정은 물질 자체에 대한 '기호'들의 경계를 먼저 넘어야 한다. 일명 '기호계적 코라'라는 지점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기호에 대한 의미화 작업을 통해서 기호는 상징이 된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기호에 대한 의미가 다른데 이것은 상상계와 실재계의 연결에서 상징계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해 갔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즉 코라의 영역을 어느쪽을 더 많이 사용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상징계적 코라와 기호계적 코라는 프랑스의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을 참고하면 된다.)
4. 혁신의 3가지 방법
혁신의 방법은 보통 기술혁신, 패러다임 전환의 혁신, 프로세스 혁신이 있다.
기술혁신
기술의 혁신은 새로운 기술이 되면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혁신의 파급력이 생겨서 다른 영역에까지 적용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세계화'는 정보통신과 이동수단이라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루어진 혁신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의 혁신
패러다임 전환의 혁신은 생각의 전환, 아이디어를 통한 발상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토마스쿤은 인류와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은 한 사회가 공유하는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그 혁명의 여파로 세계가 계속 바뀌어 왔다고 말한다. 보는 관점의 변화나,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다르게 바라보는 과정에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다. 사회혁신 분야에서는 대부분 '생각의 전환'을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범용으로 발전시키면 '사회혁신 도구'가 된다.
프로세스 혁신
기존에 사용한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것을 뜻한다. 순서를 바꾸거나 새로운 순서를 넣거나, 배치를 완전히 다르게 하면서 혁신이 일어난다. 들뢰즈의 경우 '배치'의 3종류를 이야기하며 모든 세상의 사물은 배치에 따라서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주방용 칼이 '도마-칼-사람'으로 잡혀 있으면 요리사의 도구가 되지만 '사람-칼-사람'이 되면 살인용 도구가 되는 것이다. 보통 컨설팅 회사에서는 '프로세스 재설계'를 통해서 혁신을 일으키기도 한다. 고객을 맨 먼저로 둔다던지 서비스를 맨 앞에 위치하도록 하는 것은 프로세스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개념사적 의미에서 '사회+혁신'은 '사회'의 구성요소 3가지 중에서 어떤 시간대에서 '혁신'을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3*3의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는 '사회혁신'은 제각각의 정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
0. 들어가기
사회혁신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을 공부하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도구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지금까지 리빙랩, 사회혁신 이론, 거버넌스이론, 청년주택의 사례, 사회주의와 사회혁신의 관계 등등을 알아보았다. 오늘은 '사회, 개념, 주체'라는 개념으로 간략하게 연구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사회라는 개념에 대한 구분, 그 안에서 개념들의 변화, 결과적으로 사회개념의 변화 안에서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알아 볼 것이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사회의 구분_오늘이 사회이론가들에서 구분한 3가지의 '사회'개념
2. 개념_코젤렉의 구분과 박명규, 박찬승의 '시민, 인민, 국민, 민족과 민족주의'
3. 주체_P오비탈로 본 주체의 형성
4. 혁신_3가지 구분
5. 플래폼과 민주주의_시민과 정부의 연결점
6. 거버넌스와 개념
1. 사회의 구분
- 모더니즘의 분류: 사회학적 지형도
근대modernity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철학에서, 정치에서, 문화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겠지만 오늘은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근대의 모습을 그려보자. 그럼 우리가 추구하려는 '사회혁신'에 있어서도 뚜렷한 방향성vector이 보이지 않을까?한다.
1) 고근대, High Modern
고근대의 특징은 근대성이 농후한 지점을 말한다. 근대성은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말한다.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자아의 발견을 통해서 새로운 인식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헤겔을 통해서 정신의 도약에 따른 지식의 발전은 절대정신으로 도달하는 것 같았다. 아울러서 과학주의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분해하고 쪼개면서 이해의 표면적을 늘리는 작업들이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개인이라는 작은 단위에서 시작된 분석과 이해는 점점 사회와 국가, 세계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자기통제에서 사회통제 그리고 세계통제까지 확장되는 세계관은 가장 작은 단위에서 통용되는 이론들이 가장 큰 단위에서도 통용된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했다. 근대에 발견한 '사회'라는 것은 그런의미에서 중간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 개인의 속성들이 스케일을 넓혀갈수록 사회적인 특성으로 나타나고 사회적인 특성들의 합은 국가라는 단일한 통합체계로 나타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고근대적 특징을 우리는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서 살펴볼 수 있다.
2) 후근대, Late Modern
후근대는 탈근대와 고근대 사이의 특징을 향유한다. 완전히 체계가 탈바꿈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체계가 완전하여서 항상 똑같은 산출물을 내는 것도 아니다. 부족한 부분들을 보수하면서 체계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사이에서 후 근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근대라는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주관성과 새로운 형태의 일상을 창조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근대에서 행해지던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도 '비물질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의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후근대론자들은 근대의 근대화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서 재근대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피터버거와 훅실드와 같은 학자들은 근대의 재발명을 통해서 근대의 미완의 기획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보면 프랑크프르트학파의 1세대(호르크하이머, 아노르노, 마르쿠제)가 고근대적 특징을 갖는다면 2세대인 하버마스는 도구적 이성의 회복을 위한 새로운 이성(의사소통적 합리성)의 발견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는데 이것이 후근대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3) 탈근대, Post-modern
탈근대는 우리가 흔하게 들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간이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진화,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구성,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완전성에 대한 동시성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합리적인 사회를 기본 전제로 탑재하지 않는다. 합리적일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양자역학의 시간대'가 펼쳐진다. '포스트모던적 조건'이라는 책에서 장 프랑수아 료타르는 탈근대의 특징을 '자기 자신에게서만 레퍼런스를 찾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합리성이 지배하던 고근대와 후근대와는 다르게 비합리성을 기본으로 자기자신이 생산해낸 이론과 생각, 감정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바로 포스트모던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탈근대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며 모순과 역설이 어디서나 등장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생각도 연속적이지 않고 비연속적인 부분들이 증가하며 사실은 삶 자체가 원래 비연속적이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지점들을 찾는다. 포스트모던은 처음에는 근대를 해체하는 특성을 찾다가 마지막에는 새롭게 합성하는 경향을 보인다. 종단에서는 캐치문화(완전 유치한 수준의 이미지들)와 그로우테스크(완전 잔인하고 베르나르뷔페와 같은 굵은 선들의 어두운 배경)로 분할한다.
2. 개념_코젤렉의 경우
개념사 연구에 있어서 독일의 라인하르트 코젤렉Koselleck은 개념을 장소와 시간의 중첩에서 탄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특히 시간층이 다양하게 중복될 수 있는데, 개념이 만들어진 시기, 사용된 지속시간, 앞으로 사용될 가능성 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3가지의 구분을 가지고 왔다.
1. 오래전에 사용된 용어의 의미가 지금도 지속되는 경우
2.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사회적으로 재구성되고, 재번역되어 의미가 달라진 경우
3.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경우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용어들은 개념사로 구분해 볼 때 2번의 유형에 가깝다. 사회라는 개념도 위에서 본 것처러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지만 재구성이 되었고, 주체라는 개념도 16세기 르네상스 이후에 부상했을 때는 세 번째 유형이었으나 지금은 두번째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그 외의 플래폼이나 거버넌스의 개념 같은 경우 세번째 유형으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기호와 기의를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중변환, Multi-transformation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다른 개념들이 만들어진다면 '다중시간'에 따른 '다중변환'이 만들어지고, 이것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주관적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개념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집단이 향유하고 공유하는 시간은 '약속'에 의해서 객관적인 시간으로 고정된다. 문제는 공동체마다 각기 다른 약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마다, 조직마다 각기 다른 시간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시간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시간의 연속인 삶의 흐름에서는 각기 다른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2020년대에서도 1970년대를 사는 사람들이 있고, 1970년대에도 2030년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면서 개념들은 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적용된다. 사회라는 개념도, 주체라는 개념도 시간의 비동시성으로 인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사용된다.
덧,
아래와 같이 주체와 개념사의 구분과 종합에 있어서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이 있다.
1. 주체를 개념화하면 전체적인 부분을 포괄할 수 있을까?
2. 개념사와 사회사의 종합이 가능한가?
3. 개념의 구분은 상관관계와 유사성을 어떻게 획득하는가?
3. 주체_상상계와 실재계
주체는 상상계화 실재계가 만나는 플래폼이다. 인간 자체가 플래폼이다. 플래폼의 성격 상 어떤 부분이 더 우선시되는 지에 따라서 다른 방식의 상징을 사용하게 된다. 인간의 정신과 생각에 따른 시뮬라크르는 떠돌아다니는 인간의 육체와 만나서 정착을 한다. 노마드는 다양한 생각들을 스스로 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하기도 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서 노마드를 벗어나서 정착민이 된다. 그럴 때 비로소 '나는 ~ 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정신과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관념론자들은 시뮬라크르로 구성된 '주체'에 맞는 인간 육체를 만들기 위해서 국가를 만들고, 노마드에서 축적된 경험으로 시뮬라크르를 만드는 경험론자들은 반대로 사회를 만들었다. (가정-사회-국가의 배치는 헤겔에서부터 마르크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어쨌든 '주체'가 탄생하는 광장은 '사회'이다. 우리는 사회의 성격에 따라서 플래폼인 '주체'가 가지게 되는 생각과 삶의 방식, 관계 맺기라 어떤 위치에 놓이는가에 따라서 다른 주체가 만들어 진다고 할 수 있다.
#1. RSI, 라캉
"무의식은 구조화되어 있다. 그 무의식의 구조화를 알아내는 방법은 언어이다."라고 말했던 라캉의 욕망이론의 핵심은 무의식을 구조화하기 위해서 실재계(the Real), 상징계(the Symbolic), 상상계(the Imaginary)로 나는 것이다. 세 가지 체계의 이니셜을 따서 흔히 RSI라고 부른다. 라캉의 3가지 세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정신분석학을 넘어서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까지 확대가 가능하다. 이론의 기능은 확장 가능성이니, 라캉의 RSI를 바탕으로 철학사를 다시 구성해보는 나름대로의 P-ORBITAL 모형을 제시하고자 한다.
조금 더 설명을 붙이자면, 실재계는 우리가 실재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영역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야깋고, 사람들을 만나고, 빨래를 하고, 글을 쓰면서 컴퓨터를 만지고, 게임을 하면서 핸드폰을 하는 현실 말이다. 이 현실은 다른 체계인 상상계나 상징계의 영역과 다르게 기억으로만 전해지고 오직 현재화된다. 실재는 계속해서 사라지면서 차이와 반복을 지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재계는 항상 상징계나 상상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오직 현재, 지금, 여기서만 가능한 영역인 것이다.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것처럼 '한 말'과 '하는 말'은 다르다라고 하는 것과 우리는 '영원한 현재를 사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니체가 말한 카르펜디엠은 이러한 실재계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직 이 시간, 여기에서만 이 사건과 관계가 만들어지고 다시는 이것이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일상이 반복되는 실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조그만 차이에서 완전히 다른 차이로 실재는 구성된다.
이에 반해서 상징계는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항상 무엇인가를 지칭하고 있다. 상징체계는 흔히 '언어'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상징화된 것들은 구조를 갖기 마련인데 언어는 문법체계를 가지고 사회적인 약속의 의해서 의미들을 만들어가는 상징계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라캉은 상징계를 통해서 실재계에서 경험한 개인들의 이지미와 감정이 언어화되어서 무의식의 구조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상상계는 우리의 관념 속에서 이성으로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상상을 통해서 존재하는 것들을 분할하고 연결하고 통합할 수 있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상상해볼 수 있다. '존재할 수 있는 것만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가, 존재하지 못하는 것들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철학사가 시작된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고민이다. 이것이 상상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흔히 상상계는 이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 P-ORBITAL, RSI
양자역학에 의하면 원자의 구조는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고체처럼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기체처럼 부피가 큰 것도 아니다.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우리는 시간 속의 존재이기 때문에 한 시점에 하나의 공간을 갖는다. 그러나 원자의 구조 속에서 오비탈OBITAL은 처음에는 전자가 원자 주위를 도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양자역학이 발견된 이후로는 전자가 원자를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원자 주위 어디나 존재하는 것을 알아내었다. 굳이 오비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오비탈의 종류 중에서 P-ORBITAL이 라캉이 말하는 RSI의 구조화와 같다는 것이다. 상상계와 실재계, 상징계의 흐름은 사실 정해져 있지 않다. 인간은 항상 실재계를 살면서 상상계에 접속하고 상징계를 사용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 실재를 표현하고 하면 상상계의 어떤 지점에 존재하는 사물을 꺼내서 상징계의 언어(미술로 보면 선과 색과 공감일 것이다)를 사용하여 표현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표현된 것은 또한 누군가가 보게 되면 상징계적 공명을 통해서 상상계를 변화시키고, 실재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비탈의 개념에서도 '공명resonance'은 다른 원자가 근접했을 때 전자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느꼈다면 그 작가의 어떤 지점에서 '공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라캉에게서 빌려온 RSI구조를 아래쪽에는 실재계를 위치시키고, 위쪽에는 상상계를 위치시켰다. 그리고 두 영역이 만나는 지점에 상징계를 위치시켰다. 앞으로 예술사나 미술사도 이러한 방식으로 위계를 정하고 서로의 영향력을 살펴보려고 한다. 물론 철학사에서도 이성을 중시하는 상상계적 이론들과 감성을 중시하는 실재계적 이론들이 계속해서 싸우거나 연결하거나 하면서 시대정신을 만들어가 가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예술사까지 확장시키기 않고 철학적인 관점에서만 이해의 폭을 넓혀보겠다.
#3.순수일자, 기원
실재계의 아래쪽, 바깥 쪽에는 실재를 만들어내는 존재의 기원을 '마스'라는 덩어리로 본다. 어떻게 보면 세포조직 하나이기도 하면서 스피노자가 이야기하는 신의 양태를 만들어내기 이전의 속성들의 집합mouds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실재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감성과 이미지를 중시하는 철학자들은 인간이 물질에서 시작헤서 서서히 진화하여서 생각할 수 있는 사피엔스까지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을 먼저라고 이야기하는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속임수나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깐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혹은 칸트나 헤겔 같은 사람들은 대중을 속이고 있는 거짓교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실재계를 중시하면 중시할수록 물질들 간의 관계를 더 중요시 하게 된다. (그래서 신학정치론을 이야기한 스피노자는 물질로 부터 인간이 파생되었고, 모든 것들은 속성만 다를 뿐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중세기독교가 보기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모독하는 말이 되었다.)
반면에, 상상계의 위 쪽은 순수일자인 '신'이 존재하고 있다. 모든 정신은 신으로 부터 탄생해서 상징을 만들고 실재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생각했고, 신의 정신을 일부 부여받은 인간들은 자신들의 삶을 정신과 이성를 통해서 통제하고 지속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이야기한 이데아론은 이러한 신의 이데아를 어떤 특수한 계층만 부여받고, 그렇지 못한 계층은 자연스럽게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인간의 기원이 '신'에게서 부여받은 정신이라는 전제 때문이었다.
#4. 상상계, SYSTEM
상상계의 특징은 헤겔의 정반합의 개념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기존의 정신은 새로운 부정성인 '반'대를 만나서 더 고차원적인 '합'으로 발전한다. 헤겔이 이야기하는 변증법을 통해서 지식과 이성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깊어진다. 그리고 어느 범주에서나 상상계는 나름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시스템을 만들고 변증법에 의해서 시스템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간다. 인간이 되어 간다는 것은 사회와 가정, 국가와 세계에 대한 시스템을 이해하는 과정이면서 자신도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서 더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어간다는 데 있다. 시스템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상계적 이론과 학문은 국가를 유지하거나 사회를 유지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을 양산해 내었다. 물론 경제학이나 법학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서 발전하는 모든 것들은 상상계적 특징을 갖는다. 제도와 국가 사회와 문화, 사람과 가족은 시스템의 구성요소로서 서로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역사를 발전시킨다. 이러한 역사의 발전을 통해서 문명은 만들어지고 인류는 진보한다고 믿는다.
#5. 실재계, MOVEMENT
물질들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실재계는 질서보다는 운동을 중시한다. 살아 있는 것들은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매번 다른 선택과 변화를 만들어낸다. 인간은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자연과 동물 역시도 마찬가지로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 시스템은 항상 새롭게 바뀐다.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흐름이나 운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정의내릴 수 없는 신비와 차이가 있는 반복을 통해서 지속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단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실재계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오감을 통해서 끊임없는 데이터들을 수용하고, 자신도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존재들은 떨림을 통해서 다른 존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이다. 한나아렌트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에서 자연과 사람이 만나면 노동을 하게 되고, 사람은 작업을 통해서 인공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람은 자연과 인공물 사이에서 행위를 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실재계의 핵심이다.(들뢰즈, 베르그송으로 부터 제시되는 '물질과 기억', '차이와 반복' 등의 개념은 다음에 프랑스 철학 편에서 다루도록 한다. 일단 오늘은 큰 그림만 그려보자)
#6. 상징계, Chora
상징계는 쉽게 말해서 언어를 떠올릴 수 있지만, 실재계와 상상계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면 중간의 공존 지점인 '코라chora'라는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 언어는 지시하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이 실재계에서 상상계적 개념과의 동일시가되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 '고양이'라고 부르는 순간 실재의 고양이와 머릿속의 고양이가 일치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이것도 역시 오비탈 개념이다) 상상계에서 시작된 상징계에서는 코라의 영역이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언어로 진행되는 과정을 진행하는 방면에, 실재계에서 사물을 보고 언어로 넘어오는 과정은 물질 자체에 대한 '기호'들의 경계를 먼저 넘어야 한다. 일명 '기호계적 코라'라는 지점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기호에 대한 의미화 작업을 통해서 기호는 상징이 된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기호에 대한 의미가 다른데 이것은 상상계와 실재계의 연결에서 상징계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해 갔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즉 코라의 영역을 어느쪽을 더 많이 사용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상징계적 코라와 기호계적 코라는 프랑스의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을 참고하면 된다.)
4. 혁신의 3가지 방법
혁신의 방법은 보통 기술혁신, 패러다임 전환의 혁신, 프로세스 혁신이 있다.
기술혁신
기술의 혁신은 새로운 기술이 되면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혁신의 파급력이 생겨서 다른 영역에까지 적용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세계화'는 정보통신과 이동수단이라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루어진 혁신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의 혁신
패러다임 전환의 혁신은 생각의 전환, 아이디어를 통한 발상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토마스쿤은 인류와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은 한 사회가 공유하는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그 혁명의 여파로 세계가 계속 바뀌어 왔다고 말한다. 보는 관점의 변화나,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다르게 바라보는 과정에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다. 사회혁신 분야에서는 대부분 '생각의 전환'을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범용으로 발전시키면 '사회혁신 도구'가 된다.
프로세스 혁신
기존에 사용한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것을 뜻한다. 순서를 바꾸거나 새로운 순서를 넣거나, 배치를 완전히 다르게 하면서 혁신이 일어난다. 들뢰즈의 경우 '배치'의 3종류를 이야기하며 모든 세상의 사물은 배치에 따라서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주방용 칼이 '도마-칼-사람'으로 잡혀 있으면 요리사의 도구가 되지만 '사람-칼-사람'이 되면 살인용 도구가 되는 것이다. 보통 컨설팅 회사에서는 '프로세스 재설계'를 통해서 혁신을 일으키기도 한다. 고객을 맨 먼저로 둔다던지 서비스를 맨 앞에 위치하도록 하는 것은 프로세스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개념사적 의미에서 '사회+혁신'은 '사회'의 구성요소 3가지 중에서 어떤 시간대에서 '혁신'을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3*3의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는 '사회혁신'은 제각각의 정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