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해봄] 중국현대철학_캉유웨이의 대동사상

낭만민네이션
202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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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사랑하다'라는 뜻의 철학은 원래 '생각을 생각하는 학문'이었다. 무엇이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때문인가?라는 생각말이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것에는 철학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그 쓰임새에 맞는 용법이 있다. 사회혁신을 해보고자 하는 친구들과 함께 철학스터디를 진행한지도 어언 1년반이 넘어 간다. 우리는 프랑스 현대철학의 샤르트르에서부터 시작해서 독일철학을 지나서,  영미철학의 프레데릭 제임슨까지 다녀왔다. 중간에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이제 다시 중국현대철학으로 넘어 왔다. 


1년 반전에 이 기나긴 독서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마지막에는 '처음읽는 한국 현대철학'으로 우리의 철학을 세워보고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준비하고 있다. 일단은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 왔으니, 중국의 현대 철학이 고전철학과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보는 시간부터 가져야 겠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특히 1949년 이전과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 '철학적인 사상의 흐름'은 아예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부터 캉유웨이를 시작해서, 옌푸와 평유란, 슝스리와 리쩐허우, 심푸관까지 다루어볼 예정이다.



머릿말

철학이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를 하는 핵심이다.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그들의 의식형태를 구성하는 철학사상에 대한 이해가 불가피하다. 중국 근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1849년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보고 있다. 영국과의 무역관계 속에서 빚어진 마찰이 군사력의 충돌로 이어진 이 전쟁은 중국을 봉건 전제를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근대의 시작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외세와의 충돌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중국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만, 이 충격은 3,000여 년을 이어 내려온 왕조 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민족에 빈번한 침입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신들의 철학을 주도적으로 지켜왔다. 문학적으로 별다른 마찰을 빚지 않았던 이유는 중국의 독특한 화이론에 있었다. 춘추시대 이래로 중국에서 중화의 기준은 종족보다는 그 문화에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양의 문화가 중국을 점령하던 시기는 화이론이 흔들리고 자신들의 정체성에서 심각한 훼손이 가는 일이었다. 중국에서는 원래 전통사상으로 외부에서 유입되는 사상을 해석해 왔는데, 아편전쟁 이후에는 서양의 사상으로 중국의 전통사상을 해석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서양의 철학에 대해서 중국은 어떤 자세로,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라는 커다른 문제에 직면하면서 대략 3가지의 방법이 등장하였다.

1. 전통 유학의 근대적 전환 : 캉유웨이, 옌푸, 량수밍
2. 현대 신유학의 등장 : 슝스리, 탕쥔이, 모우쫑산, 쉬푸관
3. 사회주의 도입과 발전 : 펑유란, 천듀슈, 리다자오, 마오쩌둥, 리쩌허우


대동사상, 시대적 상황

청일전쟁에서 신문화운동까지 아편전쟁 이후에 중국은 거침 없는 변화 속에서 '민족국가' 논쟁이 시작된다. 근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한족' 중심의 체계를 다시 구성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이와 함께 유토피아주의가 도래하면서 '이상사회'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따. 유토피아에 대한 중국어는 '우투오팡'으로 옌푸가 '천연론'에서 처음 거론하였다. 기존의 정치체제의 변화를 예상할 수 밖에 없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민족국가와 함께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꿈을 꾸는 것이다.

캉유웨이는 이러한 시대적 전환 과정에서 '세계주의'와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대동사회를 꿈꾸게 된다. 국경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신유학의 결합으로 전토사상을 새롭게 해석해 낸 것이다. 캉유웨이는 '인'사상을 바탕으로 서구의 철학을 흡수해 나갔다. 동서의 융합을 꾀하는 방법으로 유학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이렇게 캉유웨이는 '신학위경고', '공자개제고', '대동서'를 쓰면서 자신의 이론을 체계화하기 시작ㅎ나다.




춘추공양학, 미언대의

신학위경고와 공자개제고는 금문경학의 입장에서 고문경학을 비판하면서 쓴 캉유웨이의 저서이다. 한나라 때 유가 경전을 해석하는 방식은 금문과 고문으로 나누어 진다. 금문과 고문으로 기록된 경서를 둘러싸고 그 진위 때문에 일어난 흐름을 금고문 논쟁이라고 부른다. 아편전쟁과 열강들의 침입으로 붕괴되어가던 청나라의 문제는 학문의 중점을 잘못 두었기 때문이라고보았다. 송명대 이래로 유학의 중점은 정치와 경제가 아니라 인간의 심성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여기서의 문제의식은 공자는 원래 '체제를 바꾸기 위한 개제'를 중심으로 학문을 펼쳤지만, 역사와 교육에만 한정시킨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고문경학은 공자를 만세의 스승으로 여겨 그가 논어에서 밝힌 '술이부작'의 원칙에 따라서 공자를 교육자로 규정한다. 서술을 할 뿐이지 따로 창작하거나 형성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금문경학은 공자가 제자들과 열국을 주유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치기 위함이며, 춘추는 공자의 정치적 개혁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대 중기 이후에 금문경학은 그 세력을 잃었고 중국의 학술세계는 고문경학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청나라 말기에 금문경학은 난세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소환되었고 정치와 경제를 부활하기 위한 학문으로 재생되었다.


이러한 운동은 이이제의 사상으로 발전해서 전통적인 중국의 정치와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고 서양의 과학기술로 개혁을 진행하려는 양무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 고문경학 : 진나라 이전의 문자인 전서계통의 문자, 진시화의 분서갱유 때에도 은밀하게 보존된 경서들을 정본으로 보는 입장이다. 공자는 서술할 뿐이지 새로 창작하지 않는다. 교육과 역사에만 집중할 뿐이다.
2. 금문경학 : 한대 문자인 예서로 쓴 경서. 정치적 이상을 펼치기 위해서 공자는 '춘추'에서 개제의 뜻을 펼쳤다.


금문경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춘추공양전이다. 춘추는 공약전, 곡량전, 좌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금문경학은 '공양전'을 정전이라고 여기며 공자의 뜻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주장했다. 공양전의 관점에서 춘추를 해석한 것이 춘추공양전이고 이것이 금문경학의 중요한 내용이다. 캉유웨이가 춘추공약학의 입장을 채택한 것은 '미언대의' 때문이다. '미언'은 미래의 징조을 약속하는 은밀한 말이라는 뜻이고 '대의'는 큰 뜻을 의미하기 때문에 '미언대의'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간결한 문장의 숨은 뜻을 통해 자신의의지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공자가 춘추를 쓸 때 사용한 방법이여서 '춘추필법'이라고 한다. 캉유웨이는 창조적 견해를 중시했고 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사유작용을 통해서 선현의 이야기를 창조적으로 해석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공자의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믿지 못한다면 춘추공양전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따라서 '신학위경고'를 쓰면서 캉유웨이는 동한이래의 고문경학이 유흠이라는 학자에 의해서 모두 위조된 것임을 밝혔다.






인과 실천

근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사상의 실천을 강조했다. 무술변법을 주도한 캉유웨이는 누구보다 실천을 중시했으며 '인'의 작용은 세상을 구제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자수'라는 의미에서 자신을 지키기만 하는 공부는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유학자들이 자신을 깨끗하게만 지키는 일에 치중하여 '경세'인 세상을 구하는 일에 소흘했기 때문에 캉유웨이는 이것이 공자의 뜻과 멀다고 생각했다. 인의 최종목표는 백성을ㄹ 구하고, 널리 중생을 구제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으며, 유학의 이상은 '내성외왕'인 성인의 도를 본받아 자신을 수양하고 이를 바탕으로 왕도의 정치를 한다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인이란 '차마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의 구체적인 실천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당시 심성론과 본체론에 빠져서 개제(체제를 고침)의 본래 목적을 잃어 버린 유학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은 전쟁이며, 전쟁을 막는 일은 가장 큰 인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고문경학은 제나라의 환공을 춘추오패의 첫번째 패자로 만든 재상 '관중'을 비판했고, 관중을 비판한 전통적인 유가 사상인 송명 유가 사상에 대해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공자의 가르침을 가벼이 여긴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캉유웨이가 쓴 '대동서'는 전쟁을 반대하고 이를 위해 국가의 존망이 위협받는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전쟁 영웅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평화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유가가 지향하는 성인의 모습은 백성과 괴로움을 함께하고 아픔을 같이 경험하는 사랆이다. 여기에서 캉유웨이는 천하를 자신의 임무로 여기는 유가 지식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대일통설, 삼세설

대일통설과 삼세설은 춘추공양학의 핵심사상이다. 대일통은 왕이 명을 받아 정치를 할 때 그 다스림의 영역이 인간에서 산천초목에 두루 펼쳐져 있음을 의미한다. 천하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으며 그 정점에 천자가 있다는 '천하관'은 중국의 전통 사유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이에 대응하는 화이론은 고대 중국에서 한족 중심의 자아의식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춘추'의 뜻은 '덕을 중히 여기고 종족을 가볍게 본다'는 것이다. 캉유웨이 대동사상의 중요한 특징은 '세계주의'이며 대일통을 인류 진화의 자연적인 귀결로 보았다. 인류의 역사는 '종족'에서 대일통으로 가는 궤도에 딸라 발전하며, 그에 따라 정치체제 또한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가는 것이 순리라고 보았다. 

대일통_대일통은 왕이 명을 받아 정치를 할 때 그 다스림의 영역이 인간에서 산천초목에 두루 펼쳐져 있음을 의미한다.


삼세설은 요순시대를 이상적인 사횔로 보면서 역사의 발전은 저급한 사회에서 고급한 단계로 나아가며, 이상사회가 과거 미래에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캉유웨이는 공자가 '춘추'를 지은 목적은 '왕도'가 이미 쇠해진 상태에서 그의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려는데 있다고 보았다.
삼세설과 대일통설은 캉유웨이의 사상체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캉유웨 대동사상의 핵심은 삼세설과 예기, 예운편의 대동소강설이다. 캉유웨이는 삼세의 승평세를 '예운'의 '소강'에 대입시키고, '태평세'를 '대동'에 대입시킨다. 태평세는 미언에 속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현하기에는 힘들지만 인류가 지향하는 이상사회를 이야기한다. 삼세설 : 인간 역사과정은 거란세에서 시작하여 승평세로 이어지고, 태평세로 나아간다는 이론이다.





대동과 소강

대동은 중국 사상사에서는 일종의 이상사회를 표현하는 말이며 중국학자 천정앤이 쓴 '중국의 유토피아'에서는 6가지로 구분된다.

1. 원시공동체 : 노자의 '소국과민'이나 '예기', '예운'의 '대동'을 뜻하며 '원시공동체'ㄹ를 뜻한다.
2.비인간사회의 경계 : 불교의 '정토'나 '극락', 도교의 '선경'등과 같이 비인간세계의 경계를 묘사한 것이다.
3.이상사회 : 소설이나 시에서 묘사도니 이상적인 세계를 말한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와 같은 것이다.
4. 사회구상 대안 : 정치가나 개혁사상가의 사회구상 방안들이 나오는 모델
5. 공동체 실험 : 서구 공상사회주의와 같은 공동체 실험들에서 나타나는 것들
6. 역대 농민기의에서 제출한 행동강령

대동과 소강은 서로 상대적인 개념이다. 소강이 우, 탕, 문, 성왕, 주공 등의 성군이 다스리는 정치를 이야기한다면, 대동은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다. 대동과 소강은 공과 사의 대립적인 개념으로, 양자를 비교해보면 그 개념의 차이가 명확하다. 소강사회는 천하를 개인의 소유로 하는 사회이며,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집안만을 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권이 세급되고 예의를 기강으로 삼는 사회이다. 대동사회는 요순에 의탁하여 정치의 최고 이상을 표현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실현된 적은 없은 사회이다. 다만, 현명한 자에게 그 능력에 따라 관직을 수여하는 일은 한대 이후부터 중국 역사에서 이미 존재해왔던 사실이며, 원칙적으로 긍정되어온 보편적 원칙이다.

유토피아주의는 본래 일상의 세계와 독립되어 있는 작은 천국을 상정한다는 면에서 현실도피의 성격이 있지만 중국의 대동사상은 세상을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인간과 우주의 생명을 중시한다. 대동의 건설은 어떤 초자연이나 신적인 힘을 빌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주요한 힘은 도덕이고 인간의 노력과 자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대동은 현실ㄹ세계의 근본적 변혁과 깊게 물려 있는 동양 특유의 사상이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을 통해서 완성된다.


나눔 1.

공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공자에 대해서 ‘안되는 줄 알면서도 굳이 하는 사람’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안될줄 알면서도 굳이 해야할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철학적으로도 이런 느낌은 좋은 것 같다. 되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의 제자들이 어느 나라에 가서 정치를 하려면 공자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자신들이 공부하고 고민하는 대안들을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 도전했던 것이다. 이런 느낌이 좋은 것 같다.  캉유웨이의 삼세설 이 생각났다. 거란세는 가까운 사람에게 고마움을 베푸는 ‘친친’이고 승평세는보편적인 인류를 생각하는 인민’의 단계, 태평세는 중생이 일체가 되는 ‘애물’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인상이 깊었다.

대동사회에 대한 내용이 인상깊었다. 재화와 노동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재화가 땅에 버려질 필요는 없지만 굳이 저장할 필요가 있는가? 스스로 노동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굳이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지는 말자라는 이야기가 인상깊다.  굳이 나만을 위해서 노동하지 않는 사회는 매력적이지 않은가? 각자의 삶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노동하기는 쉽지 않은데, 대동사회를 생각할 때 이런 부분은 인상적이다.





나눔 2.

어떤 결과나 효과가 있던지 간에 하는 것이 유가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공리주의와 다르게 유가의 특징은 도덕적으로 옳은 것들을 하는 것이다.

시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시기’의 중요성을 캉유웨이가 말한다. 너무 큰 변화나 혁명은 그에 따른 영향을 사람들이 겪게 되는데, 이 부분이 역사적으로 볼 때 맞는 것 같다. 어떤 목표가 생기면 사람들과 시기에 맞게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눔 3.

유토피아와 대동사이의 차이가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의 도덕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대동사상의 특징인데 서양의 유토피아와 다른 점들이 있는 것 같다. 대동사상에서 그리는 사회는 조금 더 분명하게 그려지는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이룰려고 하는지는 알 것도 같다. 그래서 대동사상의 핵심들을 조금 더 읽어 보고 싶었다.

사상의 실천성을 강조했다고 했을 때, 자기만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지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만을 위해서 하는 공부는 큰 의미가 별로 없는 것 같고 사람들과 함께 경험하고 누리를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상과 현실의 구분에 있어서 ‘시중’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해야할 때와 해야하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것도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을 제대로 했을까라는 캉유웨이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중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그 때’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눔 4.

중국이 청나라가 망하고 아편전쟁, 변병자강, 신해혁명, 국공내전 등이 있었는데 현대판 춘추전국시대가 일어난다. 아편전쟁 시기의 중국대륙을 배경으로 한 역사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졌다. 대동사회를 그리는 글들을 보면 당시로서는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운동이었지 않았을까?

캉유웨이의 입장에서 선비였고 개혁가였으며, 운동가였지만 또 실패해서 망명을 하게 되고,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부분에 대해서 깊이있게 생각하게 된다. 망명한 이후에 보수화된 것이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신해혁명 당시에 공교회라는 종교를 만들기도 하고, 복병운동도 참가하게 되는 것을 본다. 황제가 다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시중’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지만 급진적인 입장에서 보면 ‘맛이가는’ 듯한 느낌도 있지 않을까? ‘김문수입니다’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이 사람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역사적 배경과 개인의 인생을 교차해서 보게 된다. 유학자들의 신념을 볼 때 ‘메시아이즘’이 보이는 것도 같다. 자신이 구원의 어떤 방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엘리트주의적인 사상도 들어 있는 것 같다.


나눔 5.

대동사상은 세계주의의 하나였다. 원시사회에서 군주제로, 결국은 공화제가 되는 역사발전 과정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시중’을 이야기한다. 때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때를 기달려야 하는가? 기다리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의 한계는 어떤 것일까? 인이 정말 가장 근본적인 것일까? 인은 어떻게 보면 사랑이다. 사회의 구성은 사회 이전에 개인이 존재하는데, 개인이 사회와 만나는 방식을 먼저 규정해야 한다. 개인이 사회와 만나는 것은 제도로 만나기도 하고, 문화로 만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으로 만나기도 한다.

칼 만하임의 ‘집단적이고 무의식적 동기가 의식화되는 과정은 모든 시대에 다 있었던 것은 아니며, 특수한 상황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라고 한 것을 기억해 보자. 어느 사회나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 그에 따른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은 이미지와 감정의 결합으로 '시대적인 특성'을 담아낸 '특수한 기억'을 만든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생각의 나이테가 더 깊고 더 많다. 캉유웨이가 경험했던 중국의 역사는 청나라의 멸망과 함께 새로운 사상의 유입과 사회주의의 혼돈이 주를 이루었고, 이에 대한 '정신적인 피난처'로써 과거로 돌아가 정치체제인 '유가를 부활' 시키는 것이었다.  

공자에 대해서 금문학파와 고문학파의 해석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고문학파의 입장을 따를 수도 있고, 금문학파의 입장을 따를 수도 있다. 고문학파는 유가의 경전을 이해하고 학문으로 다루는 것이라면, 금문학파는 유가의 경전에서 지금, 오늘날 꺼내 쓸 수 있는 적용점을 찾는 것이다.  시대의 개혁가라는 책에서는 ‘의지, 능력, 기회’를 개혁이 성공하는 필수로 본다. 의지가 없는데 능력이 있는 사람, 능력은 있는데 기회가 없는 사람, 의지도 능력도 없는데 기회만 있는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의지와 능력과 기회가 모두 있는 사람이 유일하게 '정도전'으로 나온다. 캉유웨이의 개혁과 모택동의 개혁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의지와 능력과 기회의 차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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